

※ 피트와 카이토가 같이 사는 IF입니다. 모두가 무사한 세계선의 뉴올라 주간.
“Treat or Goblin! 가진 거 다 내놔!!”
“……?”
눈앞에서는 회색 천이 팔다리를 잔뜩 부풀리며 위협하고 있었다. 현관문 앞에 선 네페르피트는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꼬리는 끝만 까딱까딱 움직였다.
“뭘 멍하니 있냐!! 가진 거 다 내놓으랬다!!”
“가진 거 없다냥.”
“그럼 집 안으로 쳐들어간다!!”
그렇게 선언하며 안으로 돌진하려는 천 자락의 목덜미를 네페르피트가 덥석 잡아 올렸다. 으아앙, 내려줘!! 조금 전까지 기세등등하던 아이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는지 허우적거리며 겁에 질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안에 있던 카이토가 황급히 뛰어나왔다.
“무슨 일이지?!”
“침입자다냥. 이상한 말을 하면서 들어오려길래 잡았다냥.”
“으아앙, 살려주세요-!!”
“……일단 내려놓을까.”
들고 있던 거품기를 늘어뜨리며 카이토가 말하자 네페르피트는 아이를 내려놓았다. 발이 땅에 닿자마자 아이는 종이로 만든 쥐 꼬리를 펄럭이며 문밖으로 달아났다. 쫓을까? 하고 눈으로 묻는 네페르피트를 향해 카이토는 고개를 저었다.
“쫓지 않아도 괜찮아. 애초에 위협이 되지 않는 인간 아이라는 건 너도 알고 있잖아.”
“으음~ 그렇긴 한데, 왠지 그냥 보내기는 아쉽달까.”
“그보다는 와서 반죽 만드는 걸 좀 도와주지 않겠나.”
“궁금한 것도 있고냥~”
딴청을 부리는 걸 보니 순순히 도와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카이토는 한숨을 쉬며 다시 자신의 전장으로 돌아갔다. 그 뒤를 따른 네페르피트는 부탁대로 반죽을 돕는 대신 카이토의 휴대용 단말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몇 번 화면을 쓸어내리던 네페르피트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주황빛 반죽과 씨름하고 있는 카이토를 향해 물었다.
“카이토~ 궁금한 게 있다냥.”
“뭐지.”
“’Treat or Goblin’ 말인데…”
뭐에 그리 흥미를 보이나 했더니 그거였나. 모처럼 그녀의 탐구심이 자신이 속한 인간 문화로 향하자 카이토는 저도 모르게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추려 고개를 숙였다.
“고블린은 어디서 잡는 거냥? 근처엔 없는 것 같던데… 아까 그게 고블린?”
그 질문에 손이 미끄러지며 거품기가 보울에 부딪혔다. 손아귀를 빠져나가려는 거품기를 다잡으며 카이토는 대답했다.
“……뉴올라 주간에 아이들이 외치는 인사말 같은 거다. 그럴 땐 그냥 집에 있는 간식을 쥐여 주면 돼.”
“주지 않으면?”
“고블린을 찾아야 한달까.”
그 대답에 네페르피트의 귀가 쫑긋 섰다.
“’엔’을 써서?”
“그럴 필요는 없어. 그냥 간식을 주면 돼.”
“찾는 편이 더 재밌어 보이는데.”
이대로 내버려뒀다간 무언가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카이토가 말을 고르는 사이 현관 쪽에서 소리가 울렸다. 콩콩콩. 작은 주먹 여러 개가 한 번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네페르피트의 귀가 현관 쪽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잡아 올리면 안 돼.”
“들어오려고 해도?”
“우선 나를 불러.”
말이 끝나기도 전에 네페르피트는 현관에 가 있었다. 카이토는 한숨을 쉬며 거품기를 보울 가장자리에 걸쳐 두었다. 손을 닦는 사이 문밖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No Treat! Yes Revenge! 복수하러 왔다!”
“일행이 늘었다냥~”
“혼자서는 상대가 안 될 것 같아 무리를 불러왔지! 가진 거 다 내놔!!”
문제가 생기면 당장 끼어들 생각으로 카이토는 그들을 지켜보았다. 눈을 가늘게 뜬 채 생각에 잠긴 네페르피트의 모습이 묘한 불안을 자극했다. 반면 의외의 말이 튀어나온 건 아이들 쪽이었다.
“어라, 근데 분장 대단하다. 진짜 고양이 귀 같아!”
“꼬리도!”
“만져 봐도 돼요?”
복수를 하러 왔다는 말이 무색하게 아이들은 관심을 보이며 네페르피트를 둘러쌌다. 뻗어오는 손길을 피하느라 네페르피트의 꼬리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언뜻 보면 평화로운 광경이었지만 카이토는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 만약 그녀의 생각이 조금이라도 엉뚱한 곳으로 튄다면……
회색 쥐 분장을 한 아이가 불쑥 제안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결정했어! 너, 우리랑 같이 가자!”
“냥?”
“고블린도 시켜 줄게. 어때?”
네페르피트가 고개를 돌려 카이토를 보았다. 동그랗게 뜬 안광 없는 눈은 허락이 아닌 설명을 요구하고 있었다. 카이토는 결국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같이 분장을 하고 과자를 얻으러 다니자는 거다.”
“고블린은 뭐냥?”
“말하자면 ‘술래’를 맡아 달라는 거지.”
흐음… 네페르피트의 꼬리 끝이 다시 한번 동그랗게 말렸다. 나쁜 신호는 아닌 듯했다. 그녀는 잠시 무언가를 계산하는 듯하더니 아이들을 향해 이렇게 대답했다.
“과자를 주지 않으면 뺏으면 된다는 거지?”
“맞아!!”
“아냐.”
아이들의 함성과 카이토의 대답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네페르피트는 아이들과 카이토를 번갈아 보았다. 다수결이라면 이미 결과가 나와 있었기에 이어지는 선택은 자명했다.
카이토는 한숨을 삼키며 앞치마를 풀었다. 보울은 젖은 천으로 덮어 두면 될 것이다. 반죽은 다시 만들면 됐지만 지금 그녀를 혼자 내보냈다가 생길 일은 카이토로서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나도 같이 가지.”
“아저씨는 무슨 분장인데요?”
“……보호자 분장이다.”
*
5명의 아이와 성인 남성 하나, 그리고 키메라 앤트 한 마리가 향한 곳은 길가의 작은 단층집이었다. 낮은 울타리 너머 창가에 놓인 호박 등불이 난색을 흘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몰려가 문을 두드리는 동안 네페르피트는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꼬리 끝이 느리게 좌우로 흔들렸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아이들 틈에 끼기 쑥스러워하는 청년쯤으로 여겼을지도 모르나 그 뒤에 선 카이토는 도저히 그렇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저 눈동자가 지금 무엇을 재고 있는지 그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으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안쪽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문이 열렸다. 백발의 노부인이었다.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한목소리로 외쳤다.
“Treat or Goblin!”
“어머나, 올해는 손님이 많구나.”
노부인은 눈가의 주름을 접으며 웃었다. 팔에 걸린 등나무 바구니 안에서 알록달록한 셀로판에 싸인 사탕들이 달그락거렸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앞다투어 손을 뻗었다.
“하나씩, 하나씩. 저기 고양이 양도 이리 오렴.”
부름을 받은 네페르피트는 곧장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돌려 카이토를 보았다. 우선 나를 불러. 집을 나서기 전 했던 당부를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조금은 놀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네페르피트는 걸음을 옮겼다.
노부인이 쥐여 준 것은 노란 셀로판에 싸인 사탕이었다. 네페르피트는 그것을 눈높이까지 들어 올려 이리저리 굴려 보았다. 현관불빛을 받은 셀로판이 반짝였다. 그것을 한참 들여다보던 그녀는 사탕을 코끝에 가져다 대고 냄새를 맡았다.
“먹는 거냥?”
“그럼, 먹는 거지.”
노부인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네페르피트를 올려다보았다.
“분장이 참 잘 됐구나. 귀가 꼭 진짜 같네.”
노부인의 손이 네페르피트의 머리 쪽을 향했다. 카이토가 반사적으로 앞으로 나섰지만 정작 네페르피트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주름진 손이 귀 사이를 두어 번 쓰다듬고 떠나갈 때까지 그녀의 꼬리는 허공에서 물음표를 그리고 있었다.
“자, 다음 집!! 빨리 가자!!”
이어지는 아이들의 재촉에 그녀는 순순히 걸음을 돌렸다.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그 손에는 여전히 노란 사탕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
두 번째 집 주인은 턱수염이 덥수룩한 중년 남자였다. 문을 열고 아이들의 외침을 듣자마자 남자는 씨익 웃었다.
“Goblin으로 하지!”
“으아, 고블린이다!”
아이들이 비명인지 환호인지 모를 소리를 질렀다. 멀뚱히 눈을 깜빡이는 네페르피트를 위해 쥐 분장을 한 아이가 의기양양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집주인이 간식 대신 고블린을 고르면 일행 중 숨어 있는 고블린, 즉 ‘술래’를 맞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럼 술래가 아닌 걸 고르면?”
“그때는 그 집 사람이 고블린이 되는 거야!”
과연. 네페르피트의 눈이 가늘어졌다. 동그랗게 말려 올라간 꼬리 끝이 기분 좋게 까딱였다.
남자는 턱수염을 문지르며 아이들을 훑어보았다. 초록색 천을 뒤집어쓴 아이에게서 잠시 멈췄던 시선은 이내 미끄러지듯 지나갔고 무리 뒤쪽에 선 고양이 귀의 사람에게는 아예 머물지도 않았다. 조금 전 문답을 염두에 뒀는지 정답으로 고려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남자는 마침내 뾰족한 모자를 쓴 마녀 분장의 아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정했다! 네가 고블린이지! 저 초록색 녀석은 너무 대놓고라서 함정이야. 고블린 같지 않은 쪽이 원래 제일 수상한 법이거든.”
“땡! 틀렸어. 고블린이 되어라!”
“어이쿠! 틀려버리고 말았나!”
남자가 가슴을 움켜쥐고 휘청이는 시늉을 하자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남자는 고블린이 되는 대신 안쪽을 향해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쿵쿵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파란 망토를 두른 남자아이가 튀어나왔다.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반칙이라 따지는 대신 환호하며 새 일행을 무리에 끼워 주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네페르피트가 카이토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카이토. 고블린이 된다는 게 저거냥?”
“그래. 틀리면 그 집 사람이 일행이 되는 거지.”
“흐응~”
꼬리가 느릿하게 좌우로 흔들렸다. 아이들 사이에서 신이 나 망토를 펄럭이는 새 일행을 한참 바라보던 네페르피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고블린은 집집마다 돌면서 무리를 늘리는 거네. 왕을 위해 병정을 모으는 거랑 비슷하다냥.”
“그건… 달라…….”
다르다고 말하려던 말끝이 확신을 잃고 흐릿해졌다. 집집마다 사람을 하나씩 데려와 무리를 불린다. 그렇게 정리하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네페르피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잠시 아이들 무리를 눈으로 훑더니 귀를 쫑긋 세웠다.
*
세 번째 집의 주인은 젊은 부부였다. 아이들의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두 사람은 시선을 맞추더니 동시에 입을 열었다.
“Goblin!”
아이들 사이에서 또다시 비명인지 환호인지 모를 소리가 터져 나왔다. 부부는 앞선 남자처럼 서두르지 않았다. 아이들의 얼굴을 천천히 살피며 몇 마디 귓속말을 주고받더니 이윽고 두 사람의 시선이 무리 뒤쪽에 멈췄다.
“거기 고양이 씨가 고블린이죠?”
정작 지목당한 당사자는 눈만 깜빡일 뿐이었다. 아쉬운 탄성을 쏟아내는 건 아이들 쪽이었다.
“으, 들켰다!”
“어떻게 알았어요?”
“글쎄, 제일 즐거워 보이길래.”
네페르피트의 꼬리 끝이 까딱였다. 진짜 고블린을 찾아내면 어떻게 되는 걸까. 호기심 어린 눈이 부부에게 고정되었다. 그 시선을 받은 남편이 씩 웃었다.
“자, 그럼 이번엔 너희 차례다. 우리 집에 숨어 있는 고블린을 찾아봐!”
아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소곤거리는 것도 잠시, 여섯 손가락이 남편을 가리켰다. 남자는 등 뒤에 감춰 두었던 초록색 가면을 뒤집어쓰고 두 팔을 치켜들었다.
“크하하! 고블린이 나타났다!”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마당 곳곳으로 흩어졌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네페르피트는 이내 아이들 틈에 섞여 함께 달아나기 시작했다. 고블린의 손이 닿기 직전까지 기다렸다가 몸을 빼기를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 모습은 놀이의 규칙을 완벽하게 이해한 것처럼 보였다. 쫓기는 쪽이 된 그 얼굴이 생각보다 느긋해 보여, 카이토는 모자를 살짝 눌러쓰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저씨도 하나 드세요. 고생이 많으시네요.”
“……감사합니다.”
“이제 몇 집 더 도세요?”
“저 모퉁이 집까지 돌면 이 블록은 다 도는 셈입니다.”
“어머, 그럼 마지막 집은 안 들르셔도 되겠네요.”
거기 빈집이거든요. 여자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빈집? 네페르피트의 귀가 이쪽으로 돌아갔다. 고블린에게 쫓기던 아이들도 숨을 고르며 하나둘 귀를 기울였다.
“진짜 빈집이에요? 귀신 나와요?”
“글쎄다, 꽤 오래 비어 있긴 했지.”
“밤에 지나가다 보면 창문에 불이 켜져 있다는 소문도 있고.”
가면을 벗은 남편이 덧붙이는 말에 아이들 사이에서 비명이 터졌다. 겁에 질린 비명이 아니라는 것쯤은 카이토도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쥐 분장을 한 아이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가자!! 마지막 집은 거기다!!”
“안 돼.”
“왜!!”
“귀신이 아니더라도 폐가야. 무슨 위험이 있을지 몰라.”
“내가 있는데도냥?”
“…….”
아이들이 따지고 들기도 전에 네페르피트가 카이토의 말문을 막았다. 무엇보다 그런 반응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이미 갈 마음이 가득하다는 뜻이었으니…. 아이들의 눈빛도 진작 그쪽으로 기울어 있었기에 카이토는 이번에도 조건을 붙이기로 했다.
“……그럼 내 눈이 닿는 곳에서만 움직인다. 안으로 들어가는 건 안 돼.”
“네에-!”
대답만은 우렁찼다. 부부에게 인사를 건넨 아이들이 앞다투어 대문을 빠져나갔다. 카이토는 그 뒤를 따르며 습관처럼 머릿수를 셌다. 마녀 모자, 초록색 천, 파란 망토, 여우 인간, 좀비, 회색 쥐.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그리고 맨 뒤에서 느릿하게 꼬리를 흔드는 키메라 앤트 하나.
*
모퉁이를 돌자 길 끝에 그 집이 보였다. 다른 집들과 달리 창가에 호박 등불 하나 놓여 있지 않은 이층집이었다. 담쟁이덩굴이 뒤덮은 벽 사이로 깨진 창문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가까이서 본 집은 멀리서 볼 때보다 훨씬 노후해 있었다. 녹슨 대문은 기운 채로 침입자들을 허용했고 마당에는 무릎까지 자란 마른 풀이 바람에 흔들리며 서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현관으로 이어지는 돌계단의 틈새마다 이끼가 빽빽이 끼어 있었다.
그 광경을 눈앞에 둔 아이들은 대문 앞에서 서로를 떠밀며 실랑이를 벌였다.
“네가 먼저 가.”
“싫어, 가자고 한 건 너잖아.”
“난 대장이니까 맨 뒤에서 모두를 지켜야 해.”
쥐 분장을 한 아이가 당당히 외치며 카이토의 등 뒤로 모습을 감췄다. 결국 좀비 분장을 한 아이가 한숨을 쉬며 앞으로 나섰고 다른 아이들도 그 뒤에 붙어 줄줄이 돌계단을 올랐다. 카이토는 대문 안쪽까지만 따라 들어가 걸음을 멈췄다. 현관까지 열 걸음 남짓. 무슨 일이 생겨도 충분히 닿는 거리였다.
똑, 똑.
“트, Treat or Goblin…….”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되게 작은 목소리였다. 당연하게도 대답은 없었다. 아이들은 서로 눈치를 보더니 이번엔 힘을 모아 다시 한번 외쳤다.
“Treat or Goblin!!”
바람이 마른 풀을 쓸고 지나가는 소리만이 대답을 대신하자 여우귀를 뒤집어쓴 아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도 안 나오면 어떡하지?”
“그럼 그 집 고블린이 우리 편이 되는 건데….”
“빈집인데 고블린이 어딨어?”
“몰라, 숨어 있겠지!!”
누군가 장난기를 담아 던진 대답에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 사이에서 네페르피트만이 이층의 깨진 창문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끼이이익-
현관문이 저절로 열린 것은 그때였다. 녹슨 경첩이 길게 비명을 지르자 아이들이 일제히 숨을 들이켰다. 벌어진 문틈 너머에 있던 짙은 어둠이, 그 안에 고여 있던 먼지 냄새를 바깥으로 흘렸다.
“……열렸어.”
카이토는 한 걸음 내디뎠다. 낡은 문이 노크의 진동에 밀려 열리는 일은 드물지 않다고 그렇게 말해주려던 순간이었다.
네페르피트의 귀가 홱 돌아갔다. 집 안쪽에서 무언가 요란하게 무너지는 소리가 울렸다. 어둠 속에서 하얀 것이 펄럭이며 그들을 덮쳤다.
“으아아아아악!!!”
“귀신이다!!!!”
“엄마!!!!!!!”
사방에서 비명이 터졌다. 아이들은 오던 길로 일제히 내달렸다. 돌계단에서 미끄러진 아이를 다른 아이가 잡아끌었고 아이의 머리에서 벗겨진 마녀 모자가 마당을 굴렀다. 맨 뒤에서 모두를 지키겠다던 쥐 분장의 아이는 누구보다 먼저 대문 밖에 가 있었다.
카이토는 반사적으로 아이들과 현관 사이를 막아섰다. 하얀 것은 문턱을 반쯤 넘어온 채 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그는 몇 걸음 다가가 그것을 들어 올렸다. 먼지를 잔뜩 머금은 커다란 천. 어둠에 익숙한 눈으로 안쪽을 들여다보니 복도 한가운데 쓰러진 낡은 옷걸이가 보였다.
“……그냥 천이야.”
카이토가 천을 들어 보이자 대문 기둥 뒤에 숨어 있던 아이들이 하나둘 고개를 내밀었다.
“……진짜?”
“문이 열리면서 바람이 들어가 넘어진 거겠지.”
카이토가 천을 흔들자 먼지가 일었다. 아이들은 한참 그것을 노려보더니 이윽고 서로를 향해 삿대질을 하기 시작했다.
“거봐, 내가 귀신 아니라고 했지!”
“엄마 부른 게 누군데!”
“난 안 불렀거든!”
“대장이 제일 먼저 도망갔어!”
“그, 그건… 대장은 원래 퇴로를 확보해야 하니까…!”
언제 무서워했냐는 듯 시끌벅적해진 아이들을 보며 카이토는 천을 문턱 안쪽에 내려놓았다. 문득 옆을 돌아보자 네페르피트는 처음 서 있던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채였다. 그녀는 여전히 이층의 깨진 창문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피트.”
“냥?”
“뭘 보고 있지?”
“음~… 아무것도.”
그렇게 대답하며 네페르피트는 그제야 창문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꼬리 끝이 느릿하게 한 번 말렸다가 풀렸다.
*
빈집을 뒤로 하고 큰길로 나섰을 때 해는 이미 저물어 있었다. 가로등 아래 모인 아이들은 저마다 바구니를 뒤집어 과자를 펼쳐 놓았다. 누가 사탕을 더 많이 받았는지, 초콜릿 하나가 사탕 몇 개와 맞먹는지를 두고 벌어진 설전은 조금 전 귀신 소동보다 치열했다.
“자, 이제 집에 돌아갈 시간이야.”
카이토가 손뼉을 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자 아이들은 일제히 볼멘소리를 냈다. 입을 삐죽 내민 얼굴들을 내려다보며 그는 이번에도 습관처럼 머릿수를 셌다. 마녀 모자, 초록색 천, 파란 망토, 여우 인간, 좀비, 회색 쥐, 그리고……
하얀 천.
셈을 이어가던 시선이 멈췄다. 무리의 가장자리, 가로등 빛이 채 닿지 않는 곳에 흰 천을 뒤집어쓴 아이가 서 있었다. 눈 위치에 구멍 두 개를 뚫은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 장식도 하지 않은, 가장 간편한 분장이었다.
일곱. 젊은 부부의 집을 나설 때 셌던 숫자가 다시금 머릿속을 스쳤다. 분장은 분명 여섯 가지였는데 그때 그의 셈은 일곱에서 끝났다. 뒤늦게 밀려온 위화감에 카이토의 어깨가 굳었다. 왜 그때는 그냥 넘어갔지?
“……저 아이는 누구 일행이지?”
카이토의 질문에 아이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야? 너네 반 애 아냐?”
“아닌데? 네 동생 아냐?”
“나 동생 없어.”
“그럼 누군데…?”
웅성거림이 잦아들고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 위로 바람이 불어 한기를 얹었다. 아이들의 망토와 천 자락은 일제히 한쪽으로 나부꼈지만 아이가 뒤집어쓴 흰 천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아, 아저씨….”
여우 귀를 쓴 아이가 카이토의 바짓자락을 움켜쥐었다. 빈집에서와는 달리 이번에는 아무도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카이토는 그런 아이들을 등 뒤로 물리며 자세를 낮췄다. 살아 있는 것이라면 마땅히 느껴져야 할 기척이 저 천 아래에서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기에.
“――.”
순간 바람 소리인지 숨소리인지, 그도 아니면 다른 소리인지 분간할 수 없는 울림이 들렸다. 그 소리와 동시에 카이토의 옆을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피트!”
부르는 소리에도 네페르피트는 멈추지 않았다. 발소리 하나 내지 않는 걸음이었다. 카이토는 그 걸음을 알고 있었다. 몸을 낮추고, 무게를 발끝에 싣고, 거리를 한 뼘씩 지워 나가는 익숙한 걸음.
저녁 내내 쉬지 않고 흔들리던 꼬리는 멎어 있었다.
흰 천 앞에 멈춰 선 네페르피트는 천천히 몸을 숙였다. 동그랗게 열린 동공이 눈구멍 너머의 어둠을 들여다보았다. 흰 천도, 네페르피트도 움직이지 않아 그 자리만이 시간이 멈춘 것 같아 보였다. 한 번 점멸하는 가로등 불빛만이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었다.
이윽고 그녀의 손이 허공을 향했다. 말아 쥔 손끝에서 날카로운 손톱이 빛을 받아 번득였다. 무엇이든 단번에 찢어발길 수 있는 손. 그 손이 흰 천을 향해, 아이의 머리가 있어야 할 자리를 향해 뻗었다.
카이토는 땅을 박찼지만 그보다 한발 앞서 손이 멈췄다. 딱 한 뼘. 네페르피트는 그 자리에서 손목을 뒤집었다. 쥐고 있던 주먹은 하늘을 향하더니 손가락이 하나씩 풀렸다.
노란 셀로판이 가로등 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자, 트릿.”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던 흰 천의 한쪽이 살며시 들렸다. 천 자락이 사탕을 감싸 쥐었다. 그 아래에 손이 있었는지, 카이토의 눈으로도 보이지 않았으나 사탕은 어느새 네페르피트의 손바닥을 떠나 있었다.
“――.”
다시금 바람이 불었다. 그제야 흰 천이 바람을 따라 부풀어 올랐다. 부풀고, 또 부풀더니 힘없이 펄럭이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천은 지붕을 넘어 모퉁이 끝 빈집 쪽으로 날아가 어둠 속에 섞였다. 흰 천이 떠난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사탕 껍질조차도.
한참 동안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침묵을 깬 것은 쥐 분장을 한 아이였다.
“……나 집에 가 봐야겠다.”
그 한마디가 신호였다. 아이들은 각자의 집을 향해 일제히 줄행랑을 쳤다. 카이토는 아이들이 저마다 불 켜진 현관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본 뒤에야 네페르피트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빈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지?”
“냥?”
“사탕을 주면 된다는 걸.”
질문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얼굴로, 네페르피트가 고개를 갸웃했다.
“몰랐다냥.”
“…뭐?”
“그냥 해 본 거다냥. 과자를 주면 돌아가는 거라고 그랬잖아. 규칙이 저것한테도 통하는지 궁금했을 뿐이야.”
빈 손바닥을 쥐었다 펴는 손끝이 가벼웠다. 꼬리가 한 번 크게 원을 그렸다.
“그랬더니 진짜 돌아갔다냥!”
동그랗게 뜬 눈이 번뜩였다. 그 빛에는 흥미로움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서려 있지 않았다.
“……손을 뻗었을 때부터 사탕을 줄 생각이었나?”
“아니? 찢어 볼까 했다냐.”
“…….”
“근데 안에 아무것도 없었어. 빈 걸 찢어도 재미는 없으니까, 규칙대로 해 본 거다냥.”
이층의 깨진 창문. 그녀가 한참 동안 올려다보던 곳이 떠올랐다.
“빈집에서 창문을 보고 있었던 건?”
“거기 있었거든. 세 번째 집에서부터 끼어 있었는데 거기선 창문에 올라갔다냥.”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몰라.”
관심 없다는 듯 네페르피트의 귀가 한쪽으로 까딱 젖혀졌다. 그녀에게는 그저 찢어 볼 가치가 있는지 재어 보고 아니라는 결론이 나자 다른 방식으로 건드려 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 왜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지?”
“카이토가 알면 애들 다 데리고 돌아갈 거잖아.”
그럼 재미없다냥. 덧붙이는 말투가 너무도 태연해서 카이토는 저도 모르게 이마를 짚었다. 그사이 네페르피트는 다시 빈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셀로판이 반짝이던 자리였다.
“근데 카이토. 그거 무슨 맛이었을까냥.”
“……글쎄. 레몬 맛 정도였겠지.”
“레몬?”
“노란색이었으니까.”
네페르피트는 납득한 건지 아닌지 모를 얼굴로 귀를 한 번 털었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들어 카이토를 보았다.
“그럼 이번엔 내가 묻겠다냥. 인간은 왜 이런 규칙을 만든 거냥?”
“무슨 뜻이지?”
“문을 두드리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과자를 주잖아. 찾아내서 없애는 쪽이 더 확실한데.”
악의가 존재하지 않는 물음이었다. 그녀에게는 정말로 그 편이 더 확실했을 것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문을 두드리면 문을 열고 확인한다. 위험하면 제거한다. 그것이 그녀가 태어난 세계의 규칙이었으니.
카이토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아마 오래전 사람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해가 진 뒤 문을 두드리는 것들 중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섞여 있다는 걸. 그것들을 전부 찾아내 쫓아낼 수는 없다는 것도. 그래서 사람들은 칼 대신 바구니를 들고 문을 열기로 했는지도 모른다. 무엇이 찾아왔는지 끝내 모르더라도 손에 단것 하나를 쥐여 주면 그것은 돌아간다고 믿기로 한 것이다.
그는 옆에 선 존재를 보았다.
방금 전까지 정체 모를 것을 찢어 볼지 말지 저울질하던 손. 그 손이 오늘 저녁 한 일이라고는 사탕을 쥐고 다니다 건네준 것뿐이었다. 노부인의 바구니 앞에서 순순히 고개를 숙였고, 아이들 틈에 섞여 고블린에게 쫓기는 시늉을 했다. 그 모든 것이 호기심이었을 뿐이라 할지라도―
“……이기는 것보다 달래는 쪽이 쉬울 때도 있으니까.”
“흐응.”
네페르피트의 꼬리가 앞뒤로 흔들렸다.
“인간은 이상하다냥. 이길 수 있으면 이기는 게 좋지 않아?”
“이길 수 없을 때가 더 많아서 그렇다.”
“카이토도?”
카이토는 대답 대신 모자챙을 끌어내렸다. 네페르피트는 그 침묵을 대답으로 받아들이고 코끝을 실룩이며 집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까 그 주황색 반죽. 그것도 달콤한 거냥?”
“호박파이다. 다 구우면 그렇지.”
“그럼 빨리 가자냥.”
말이 끝나기도 전에 네페르피트는 이미 몇 걸음 앞서 있었다. 카이토는 마지막으로 모퉁이 너머를 한 번 돌아보았다. 빈집 쪽은 여전히 어두웠다. 이층 창문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젖은 천을 덮어 두는 걸 깜빡한 보울 속 반죽은 예상대로 가장자리부터 말라 있었다. 카이토는 미련 없이 그것을 덜어 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이번엔 도와주겠지?”
“해 보겠다냥.”
거품기를 넘겨받은 네페르피트는 그것을 눈높이까지 들어 올려 이리저리 살폈다. 그러고는 보울에 거품기를 꽂고 한 바퀴 돌렸다.
주황색 반죽이 주방 벽에 줄무늬를 그렸다.
“……힘을 빼.”
“이 정도냥?”
두 번째 시도에서는 카이토의 앞치마에 점이 찍혔다. 세 번째에는 보울이 조리대 위에서 반 바퀴 돌았다. 네 번째부터는 반죽이 보울 안에서만 돌기 시작했다. 다섯 번째쯤 되자 카이토가 할 때보다 매끈해졌다. 무엇이든 빨리 배우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그게 거품기든 놀이의 규칙이든.
반죽을 틀에 붓고 오븐 문을 닫자 네페르피트는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유리문 너머로 주황색 표면이 천천히 부풀어 올랐다. 시나몬과 구운 호박 냄새가 주방을 채우기 시작하자 그녀의 코끝이 쉴 새 없이 실룩였다. 꼬리는 오븐 타이머의 초침에 맞추듯 바닥을 톡, 톡 두드렸다.
“아직이냥?”
“아직이다.”
“지금은?”
“30초 전에 물어봤잖아.”
땡. 마침내 타이머가 울렸다. 오븐 장갑을 낀 카이토가 틀을 꺼내 식탁에 올려놓자 네페르피트가 의자 위로 뛰어올랐다. 쪼그려 앉은 자세 그대로였다. 카이토는 그걸 바로잡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김이 피어오르는 파이를 한 조각 잘라 접시에 덜어 주자 네페르피트는 그것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냄새를 맡고, 포크 끝으로 표면을 눌러 보고 다시 냄새를 맡았다. 이윽고 한입 베어 물었다.
귀가 바짝 섰다.
“어떻지?”
“…….”
대답 대신 포크가 바쁘게 움직였다. 접시는 금세 비었다. 마지막 부스러기까지 포크로 긁어 먹은 네페르피트는 빈 접시를 카이토 쪽으로 밀었다.
“카이토. Treat or Goblin.”
“방금 먹었잖아.”
“안 주면 고블린 찾을 거다냥.”
동그랗게 뜬 눈이 카이토를 올려다보았다. 카이토는 짧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칼을 들었다. 아까보다 조금 더 큰 조각이 접시 위에 올라갔다. 꼬리 끝이 만족스럽게 까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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